찬양 : 184장 불길 같은 주 성령
말씀 : 마태복음 17장 14-20절
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제목 : 믿음의 기도로 받는 성령
안녕 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사도행전 19장 2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여러분은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여러분은 성령을 받았다는 표징을 무엇으로 증명할수 있습니까
저는 처음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문제가 제일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믿음으로 받는 성령’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첫째로 믿음으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20절 말씀을 보면‘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기도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기도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놓일 때를 만날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요
모든 종교를 가진 사람들, 설령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어떤 알 수 없는 대상에게 기도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순간이 찾아오게 됩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그렇습니다.
그런 일들이 있으므로 사람들은 겸손할 수 있고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믿고 의지했던 것들이 무너질 때 그렇고 아무런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 그렇습니다.
이렇듯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은 어떤 절대자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럴 때 신앙의 사람들은 그 문제를 창조자이신 하나님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이 대단한 것 같지만 너무 제한적이고 미미하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가 하나님의 힘으로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당신의 일을 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내가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기도는, “나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하나님이 하십시오”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이 기도의 핵심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것은 쉽다. 그러나 주님께서 하시도록 하는 것은 어렵다.’
이 말의 의미는 결정적일 때는 주님이 드러나지 않고 사람이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는 끊임없이 ‘내가 아니라 주님입니다’라고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기도와 믿음을 같은 것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27절 에서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깊이 생각해보면 기도와 믿음은 한 뿌리입니다.
서로 맞닿아 있고 하나에서 출발했습니다.
믿음 있는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반대로 믿음 없는 사람이 기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하게하시도록 맡겨드리는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통해서 자신이 하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하려고 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앞에 것은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고 뒤에 것은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 외에는’ 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이 기도 외에 다른 방법으로 귀신을 쫓아내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받았습니다. 마가복음 6장 7절을 보면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9장에서는 제자들이 귀신을 제어하지 못해 쩔쩔 매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자들은 자기들이 뭔가를 해보려고 했습니다.
자기들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귀신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준 능력이면 다될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능력으로 하려하지 말고 기도로 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능력으로 하지 말고 주님을 더 의지하려고 해야 합니다.
우리는 24시간을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과 대화해야 합니다.
기도를 호흡이라고 하는 것은 이 주님의 임재하심을 숨을 쉬는 것처럼 느끼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매순간 하나님을느끼며 그분과 함께 그분의 도우심으로 살아감을 느끼는것이 곧 호흡과 같은 기도입니다
숨을 쉬는 사람은 숨을 쉴 때 아 내가 숨을 쉬어야지 해서 숨을 쉬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숨을 쉬는 것입니다.
주님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라는 말입니다.
기도도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이자 호흡입니다.
성경을 읽다가도 기도합니다. 주님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차를 타고 가다가도 기도합니다. 책을 읽다가도 기도합니다. 신문을 보다가도 기도합니다.
길을 걷다가도 기도하고 TV를 보거나 밥을 먹거나 어떤 여가를 가질 때도 기도합니다.
설거지를 할 때나 집안 청소를 할 때도 기도합니다.
우리의 삶이 곧 기도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기도는 쉴 틈이 없습니다. 기도는 평안이자 기쁨입니다. 기도는 자유이자 해방입니다.
기도를 하면서 이런 맛을 느낄 수 있어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의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5월이면 야외예배를 드립니다
몇 년전 제가 남선교회 회장을 맡고 있을 때 남선교회 주관으로 행사를 주관해야 하는데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조금만 기다리다가 오후부터 비가 내리도록 해주십시오. 하고 저는 기도했습니다.
다른 분들도 기도했을 겁니다.
그런데 정말 비가 그쳤습니다
물론 비가 오지 않은 것이 우리 기도 때문이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한 사람은 우리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삶은 해석이고 신앙도 해석입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삶과 신앙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신앙이라는 것은 항상 율법적인 잣대로 해석합니다.
어떤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율법적인 시각으로 판단합니다.
좋은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이 조상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선행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점령하고서 이렇게맹세합니다
“이 여리고성을 일으켜 다시 세우겠다고 하는 자는 주님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성벽 기초를 놓는 자는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성문을 다는 자는 막내아들을 잃을 것이다.”
그로부터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열왕기상 16장 34절에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여호수아가 그렇게 저주한 것은 하나님이 하게 하신 것이며, 하나님은 그 일을 수백 년이 흐른 뒤에 이루셨다고 성경은 해석합니다.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면 모든것이 그렇게 보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주의 탄생도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상황에서 기도 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새벽에, 한 밤중에, 한적한 곳에서, 골방에서, 산에서,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까지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든지 기도하셨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늘 하나님과 함께 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도 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사셨습니다.
세째는 예수이름으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 기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모여 귀신들려 비명을 지르는 사람을 보고 그를 위해 합심하여 기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귀신 들린 사람이 일어나 신앙생활을 오래한 분을 넘어뜨리며 달려드는데 초신자인 제가 ‘예수 이름으로 더러운 귀신아 물러가라’하고 외치며 ‘조용히 하라’고 하면 귀신이 놀라서 쫓겨 가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변화산을 다녀온 이후 귀신들린 사람들을 향해서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면으로 말씀이 시작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18절 말씀에 보면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단 변화산에서 내려온 제자들은 정말 극과 극의 현실의 문제 앞에 당장 노출되어야 했습니다.
함께 변화산에 오르지 못한 제자와 함께 변화산에 오른 제자... 모두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은 똑같습니다
예수님을 보자 마자 귀신들린 아들의 아버지는 답답한 마음에 제자들에게 부탁했지만 그들은 전혀 고쳐주질 못했다고 안타까워 하며 예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19절 말씀을 보면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하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능력 행하지 못함을 책망하는듯한 어투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
비단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한 제자들을 향해서만 한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 곳에 둘러 있는 모든 사람들과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을 향한 책망일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귀신들린 사람을 향하여 ‘더러운 귀신아 나가라’하고 외칠수 있으며 귀신을 쫓아낼수 있습니까?
십자가의 고난을 예고하신후 변화산을 다녀오신 후 이제 곧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예수님에게 그의제자들이나 그를따르는 무리들은 전혀 변한것이 없습니다
믿음이 진보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의 상태가 이렇게 성장하지 않는것이 안타까워 하고 있는 것입니다다.
에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의 모습을 보시면서 우리들의 믿음의 상태가 이렇게 성장하지 않는것이 안타까워 하고 있을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마가복음 9장 21절 말씀에서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마가복음 9장 22절 말씀에서 아버지의 간청이 이어집니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귀신이 물에도 불에도 자주 그를 던진다는 것입니다.
귀신에 의해서 지배당하는 삶을 살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심정은 안타까워 보이지만 그러나 아버지의 말속에서 아버지의 믿음을 엿본다면 실망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고칠 수 있으면 고쳐주세요?
반산반의하는 태도의 믿음을 볼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이의 아버지의 믿음에 대해서 먼저 지적을 하십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 말씀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할수있거든? 할수있거든? 절대 그런 말 하지마라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참 믿음데로 된다는 말이 참 사실이 아닙니까?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건 특별 상황에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모든 것 모든 것!!!
정말 내가 지금 이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라 제자들이 아니라 오늘 내가 이 말씀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으시고 쫓아 내십니다.
마가복음 9장 25-27절 말씀에서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할렐루야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의 결론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 믿음을 어떻게 측정할수 있습니까
누구나 다 믿는다고 말합니다.
예배 시간에도 누구나 다 아멘 합니다.
믿습니까 하면 아멘 합니다.
그러나 능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제자들이나 우리들이나 자신들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크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능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결론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8절 말씀에서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현장에서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집에 들어가서 제자들은 조용히 예수님에게 여쭈었습니다.
‘어찌해서 우리들은 능히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이 말은 제자들이 할 말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물어 싶은 말입니다.
어찌하여 어찌하여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어찌하여 부흥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어찌하여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마가복음 9장 29절 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그러면 우리는 기도를 얼마나 해야 합니까?
기도는 양의 문제는 아니고 얼마나 자주 해야 하는 횟수의 문제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중언 부언하는 기도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오늘의 키워드는 믿음의 기도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냥 기도가 아니고 믿음의 기도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음을 책망하신 주님은 기도외에 이런 능력이 나타날 수 없음을 지적하시고 계십니다.
문제는 믿음의 기도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다 알듯이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믿음을 가지고 그 말씀을 붙들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해야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나의 기도 생활을 점검해 보십시다
나의 말씀 생활을 점검해 보십시다
새벽에 일어나기는 하고 성경을 읽기는 읽습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정말 그 말씀을 능력의 근원으로 새벽을 능력의 원천으로 믿고 나아가고 있는가 생각해 볼 때 실로 부끄러울 뿐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외형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용이 중요한 것입니다.
말씀을 읽을 때는 감동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그 말씀이 내 심령을 쪼개는 말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는 임재의 처소이기 때문에 신령과 진정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형식적인 성경과 형식적인 기도는 오늘 제자들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성경을 읽는가? 누구를 위해서 기도를 하는가?
진정 말씀과 기도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는가?
오직 말씀을 통해 붙든 믿음의 기도를 위해 마음이 뜨거워야 하고 하늘로부터 능력을 공급받는 원천임을 기억하여 항상 깨어 근신하고 기도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벽마다 이 땅의 여리고성이 무너지기를 기도하고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함께 기도할 때, 닫힌 환경의 문이 열리고, 병에서 놓임받고,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축복을 누리게 될줄로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기도의 능력을 사모함이 없이 말씀의 능력을 사모함이 없이 오늘 귀신 들린 자의 아버지 처럼 믿음없이 살아온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제자들처럼 나의 지식과 경험과 외식적 경건으로 신앙생활을 한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나의 기도는, 나의 경건은, 나의 믿음은, 나의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나의 마음이 주를 온전히 향하지 않고 나의 정신이 온전히 하나님의 능력을 기다리지 않고 난 외식적인 모습속에서 능력 있는자 처럼 흉내내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두렵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깨뜨려 주시옵소서
이제 우리가 게으름의 옷을 벗고, 의심의 문을 깨부수고, 불신의 벽을 넘어 온전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붙들린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참된 기도가 참된 믿음이 되어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한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고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인도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였습니다 아멘